[책마을] '아키히토 30년'은 에반게리온·대지진의 시대

입력 2023-01-13 17:49   수정 2023-01-14 01:11

헤이세이(平成) 원년인 1989년, 일본은 ‘두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하나는 소련의 몰락으로 인한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이고, 다른 하나는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이었다. 일본의 좌익과 우익은 각각의 ‘아버지’를 잃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일본인은 ‘모범’을 잃었고, 지식인은 신뢰를 잃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헤이세이 시대는 그로부터 30년간 유지됐다.

일본의 역사학자 요나하 준은 <헤이세이사>를 통해 1989년부터 2019년 사이의 현대 일본 역사를 조명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재위 기간으로 헤이세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던 시기다. 전쟁 직후 베이비붐(1947~1949년) 때 태어난 세대를 이르는 ‘단카이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활약한 시대다. 저자는 이 시기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을 다각도로 되돌아본다.

1989년 참의원 선거 직후 우노 소스케 총리가 헤이세이 시대 첫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자민당 사상 처음으로 파벌 영수가 아닌 총리였다. 파벌을 이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채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됐다. 저자는 이후에 주목받은 총리 3명(하시모토 류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도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헤이세이 전반 1990년대, 정체성의 상실에 빠진 일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폭발적인 열풍이었다. 일본에서 사회현상으로 떠오른 이 애니메이션은 중학생인 주인공의 어두운 심리, 기독교와 이교도의 대립 등을 주제로 삼았다.

저자는 헤이세이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으로 1995년 옴진리교의 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 자위대 파견, 2009년 비자민당 정권으로의 교체 등을 꼽는다. 무엇보다 헤이세이 23년(2011년) 3월 11일 일어난 후쿠시마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을 전후 대혼돈 시대처럼 되돌려 놨다.

저자는 딱딱한 학술서의 필체가 아니라 소설과 같은 인문서의 형태로 사건들을 서술해 간다. 이 책은 ‘전후’도 ‘역사’도 사라져버린 일본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지식인의 생각을 엿보며 현재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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